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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리의 요가 이야기 – 제 1화: 매일 요가하는 법
제가 맨 처음 ‘요가’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2가지였습니다.
‘유연한 사람들의 묘기’, 혹은 ‘옥주현의 다이어트’.
저는 어릴 적 굉장히 몸이 약했고, 말랐고, 툭하면 위장병에 걸리곤 했습니다. 이 때문에 정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자신감도 없었죠.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즉 사회 생활을 막 시작할 때에도 체력이 너무 약해 보인다며 좋게 평가 받고도 면접에서 떨어지기도 했어요.
물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말 많은 것들을 해봤습니다. 그 중에는 물론 요가도 있었지요.
2010년 쯤이었던 것 같아요.
살을 찌워보겠다며 정기권을 끊은 헬스장 내에는 요가클래스가 있었고,
전 엄마 등에 떠밀려 파랗다 못해 새파란 매트 위 몸을 풀고 계시는 아주머니들 사이로 쭈뼛쭈뼛 걸어 들어갔지요.
그리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뻣뻣하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살면서 그렇게 허벅지와 복부 사이에 있는 공기를 누르고 싶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2010년 제게 요가는 “유연성이 없으면 못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유연성이 부족한 저는,
그래서 요가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돌고 돌아 헬스장에서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몇 년간을 정말 웨이트에 몰두했습니다.
뼈밖에 없던 몸에 근육이라는 것이 생기고 점차 몸이 변해갔습니다. 운동을 통해 몸에 활력이 생긴 것은 물론이고요.
그런 과정에서 저는 20대 중반에서야 “나도 원하면 할 수 있구나!”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곧 슬럼프가 왔습니다.
몸이 바뀌면서 성취감을 얻은 만큼, 제 몸과 다른 사람의 몸을 비교하게 되더군요.
이 세상에는 타고난 몸을 가진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기껏 근육을 키워놨더니 XXS 사이즈 때가 더 예쁘다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제가 얻었다고 생각한 자신감이란 그저 사람들 앞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스쳐가는 감정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마음의 치유’라는 그 흔하디 흔한 요가원의 광고 문구를 봤습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그날은 무언가에 홀린 듯 요가원에 등록을 했습니다.
물론 2010년에 내렸던 요가의 정의- ‘유연성이 없으면 못하는 운동’은 변하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저는 요가에 점차 빠지게 되었지요.
매번 수련을 할 때마다 요가가 왜 마음을 치유한다고 하는 지 조금씩 알 것 같았습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저녁에 요가원 갈 생각에 설레었고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좋아서 매일 요가원에 갔지요.
하루 종일 저를 괴롭히던 온갖 것들은 매트 위에서 호흡과 동작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덧 사라지곤 했어요.
그 무렵 KYF에서 요가지도자과정(TTC)에 도전하게 됩니다.
취미로 즐기던 때와는 달리, 이제 수련은 꼭 해야만 하는 것이 되었어요.
자격증 취득의 목적이 있어서 그랬는지 제 마음은 매트 위에 놓인 내가 아니라, 이를 벗어나 주변으로 향했습니다.
동기들과 나를 비교하고, 회원들과 나를 비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제는 되던 아사나가 오늘은 안되더군요.
욕심을 내서 억지로 하다가 다치는 친구들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나를 치유해주던 그 요가가 아니었어요.
그제서야 요가가 무엇일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대체 요가가 다른 운동과 다른 점이 뭐길래, 내가 느꼈던 감정과 느낌은 뭐였고, 현재의 나는 어떤 것을 놓치고 있는 건지 너무도 궁금했거든요.
다행히 TTC 과정 중 필수로 읽어야 했던 요가 경전 [요가수트라]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요가 수트라]에서는 라자요가(Raga Yoga); 심신을 훈련함을 통해 해탈을 얻는 요가 방법으로 즉, 마음을 닦는 수행을 다룹니다.
“요가는 모든 것이 요가이다. 그 뜻은 개인적인 나와 우주적인 나가 하나로 일치되는 것이 요가인 것이다.” -파탄잘리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멀리서 놓고 오랜 기간 동안 바라보니 저만의 답을 찾을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제가 아는 지인은 청소를 할 때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신발을 구매할 때, 누군가는 맛있는 것을 먹을 때가 그래요.
그러한 행위를 할 때만큼은 그 어떤 잡념도 들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고 보니 요가를 할 때 왜 그런 기분을 느꼈는 지 알 것 같았어요.
요가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나를 억누르던 걱정, 무기력함, 의심, 부주의, 게으름 등에 신경을 쓸 틈이 없이
오직, 나에게만 집중했어야 했거든요.
바로 사마디(삼매-집중된 상태)였던 것이죠.
사실 요즘에는 TTC과정을 들을 때처럼 매일 요가원에서 수련을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일상생활에서 요가를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우주적인 나’가 나의 ‘자아상’이라면, ‘개인적인 나’를 그 ‘자아상’과 일치시키는 것이 맞겠죠.
그렇기에 현재의 저(개인적인 나)를 좀 더 들여다보고, 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에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요.
그것이 뭔지 잘 모르겠다면 지금 당장 노트를 펴보세요.
그리고 내가 뭘 할때 편안하고, 행복한지 차근차근 적어보세요.
시간이 필요하다면 시간을 두고 적어도 괜찮아요.
가능하다면 매일 실천하는 거죠.
따뜻한 물에 목욕하기, 그림 그리기, 양초 켜고 책읽기, 음악에 맞춰 춤추기 등등이요.
요가 수트라의 1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제 1장 삼매의 장 : 아타 요가누사사남
하나에 집중된 마음은 마치 카르마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완전한 상태이며, 존재하는 대상 이전의 모든 전체를 본다.
요가는 매트 안에도, 밖에도 존재해요.
여러분의 요가는 무엇인가요?
글: 고은아 / 아메리카요가 홍보팀 대리 / 요가수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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